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의 벨라루스 점령 (문단 편집) == 결과 == 독일측 연구에 의하면 1941년 6월 당시 벨라루스 SSR 주민은 총 1,060만 명이었다.[* 1939년 소련 인구조사에 따르면 벨라루스 SSR 주민은 총 556만 8,994명이었다. [[폴란드 침공]] 후 폴란드 북동부가 벨라루스 SSR에 병합되어 인구가 대폭 늘었다.] 그 중 788만 명은 벨라루스인, 93만 5천명은 유대인, 92만 5천명은 폴란드인, 59만 명은 러시아인, 16만 2,500명은 우크라이나인이었다. 3년 간 나치 치하에서 희생된 벨라루스 SSR 주민은 소련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223만에 달했고, 20세기 말 벨라루스인 역사가들도 최소 195만의 사망자를 인정했다. 사망자 중 유대인은 80만에서 100만 명에 달했다. 2차대전 중 파괴된 마을 9,200개 중 5,295개가 독일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그 중 628개는 주민이 절멸되었다. 또한 120만채의 건물이 전소되었다. 특히 [[민스크]]와 [[비텝스크]] 등 대도시는 건물과 인프라의 80%가 파괴되었다. 민스크는 전후 [[영웅 도시]]의 칭호를 수여받는다. 나치 독일은 슬라브인을 게르만족의 노예 노동력으로 사용하려 했으므로 벨라루스 지식인들을 거의 대부분 학살했고 38만명을 자국으로 이송하여 강제노동에 써먹었다. 주요 학설은 아니지만 다른 추계는 벨라루스 SSR 주민을 900만 명으로 잡고 그 중 피살자를 160만-170만으로 잡기도 한다. 그 중에는 포로 70만, 유대인 50만-55만, 소위 빨치산 토벌로 인한 사망자 34만 5천, 기타 10만. 이것은 소련군에서 복무하다 전사한 벨라루스인 수십만 명을 제외한 숫자다.[* Gerlach, Christian (1999). Kalkulierte Morde. Die deutsche Wirtschafts- und Vernichtungspolitik in Weißrußland 1941 bis 1944. Hamburg: Hamburger Edition. p. 1158.] 그리고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숨진 34만 5천 명 중 90%는 민간인이었다. 벨라루스에서 자행된 홀로코스트는 유럽의 유대인 중심지 중 하나였던 벨라루스 유대인 공동체와 문화를 완전히 파괴했다. 전전 거의 100만에 달했던 유대인들 중 90%가 학살되었고 남은 생존자들도 하나둘씩 외국으로 이주하여 홀로코스트로 인한 피해를 도저히 복구할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소련 붕괴]]의 여파로 인해 그나마 남아 있던 유대인들도 거의 대부분 외국으로 이주했다. 2019년 기준으로 벨라루스에 남은 유대인은 1만 3,705명에 불과하다.[* 단 이것은 스스로 유대인으로 정의한 사람의 숫자로, 유대인 혈통을 가진 사람의 수는 그 몇 배는 될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